인터스텔라에 대한 리뷰를 안 쓸까했습니다. 영화 자체로 별로 할 말이 없었거든요. 그냥 재미있게 본 오락영화라서 말이죠. 지나치게 유명하기 때문에 리뷰를 쓸 이유도 없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글을 쓰는 이유는 일부 언론의 ‘지적 허영’운운하는 헛소리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번 글은 영화 자체에 대한 얘기보다 좀 다른 얘기를 할 것입니다. 영화를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인터스텔라는 그냥 볼만한 오락영화입니다. 과학적 지식이니 어쩌니 해도 필요한 지식은 영화 내에서 설명해줍니다. 웜홀의 시각화에 대해 감독이 열심히 자랑을 하기는 했지만 관객은 그냥 봐도 됩니다. 인터스텔라 뿐만 아니라 눈이 즐거운 영화들은 대부분 블루레이의 부가영상으로 감독들의 자랑이 들어가 있습니다. ‘당신들의 눈을 즐겁게 하려고 내가 이렇게 노력했어.’라는 것이죠. 관객에게는 그 장면이 CG인지 미니어쳐인지 구분하는 것보다 그 장면이 흥미로운 것인가 라는 점이 중요하죠.
다시 인터스텔라로 돌아가 봅시다. 인터스텔라의 화면이 식상했습니까? 아니죠. 물론 화면만 대단하고 흥행에 실패한 영화도 있습니다만 좋은 화면은 분명히 흥행에 도움이 됩니다. 스토리에 대한 부분은 사람마다 취향이 나뉘겠지만 극단적으로 호불호가 갈리는 내용이 아니라 무난한 내용이었죠. 좋은 화면과 무난한 내용의 조합만으로도 적당히 흥행의 요소는 갖추고 있다고 봅니다. 그 이후는 마케팅, 입소문, 개봉시기 등의 요소가 결정하겠죠. 개봉관 밀어주기도 무시 못 하고요. 그러니 ‘지적 허영’운운하지 않아도 흥행 자체가 납득 안 갈 수준은 아니라는 겁니다.
물론 ‘지적 허영’이라는 얘기가 나온 게 유독 한국에서만 흥행했다는 점 때문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만 흥행했다는 것부터 이상합니다. 미국에서도 2014년 개봉 영화 중 15위의 성적인데 망했다고 보기에 미묘합니다(자료는 IMDB참조). 헝거게임,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캡틴 아메리카, 호빗, 트랜스포머, 엑스멘, 혹성탈출,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같은 영화들이 개봉했던 해입니다. 그러니 유독 한국에서만 성공했다는 것도 조금 과장된 느낌이 있습니다. 인터스텔라의 흥행 성적은 킹스맨보다 높습니다. 물론 제작비를 생각하면 실제 수익은 인터스텔라가 훨씬 적겠지만 한국에서만 성공한 영화는 아니라는 겁니다. 즉, 미국에서도 흥행했는데 단지 한국에서 그 이상으로 흥행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 정도 차이는 개봉 시기나 경쟁작의 유무에 따라서 충분히 바뀔 수 있죠.
예를 들면 미국에서는 인터스텔라가 11월 6일에 개봉했는데 헝거게임-모킹제이 part I이 11월 21일에 개봉하면서 관객을 끌어갔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헝거게임이 인기가 없지만 미국에서는 2014년 2위를 기록할 정도였으니까요.
물론 다양한 가능성 중 ‘지적 허영’을 의심해 볼 수 있겠죠. 하지만 진짜 언론이고 ‘지적 허영’이 흥행의 원인이라고 생각했다면 ‘지적 허영’의 원인도 지적해야하는 것 아닐까요?
- 지적 허영이란 게 존재한다면 실제로는 지적이지 못하다는 것이겠죠. 허영이라는 사전적 의미에는 ‘분수에 넘친다’라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 지적인 사람이라면 자기 능력 이상의 것을 욕심낸다고 허영이라고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이 통일장이론을 주장했지만 실제로 밝혀내지 못했다고 ‘지적 허영’이라고 표현하지는 않습니다.
대학 진학률이 OECD 1위인 나라에서 ‘지적 허영’이란 게 존재한다면 한국의 교육 제도를 비판해야 합니다.
- 단순히 취향의 차이로 볼 수 있는 영화 관람에서 왜 자신의 지적 수준을 뽐내야 하는 지도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제가 극장에서 ‘초속 5센티미터’를 봤었습니다. 직장에서 주말에 뭐했냐는 대화가 나와서 영화 봤다고 했습니다. 당연히 무슨 영화인지 물어봤고 대답해줬는데 그 때의 반응이 ‘뭘 유치하게 그런 걸 보냐?’였습니다. 그냥 ‘애니메이션=애들 보는 것’이라는 생각에서 얘기했겠죠. 이런 경험 저만 있을까요? 주위에서 취미 생활에 대해 간섭하는 경우는 흔히 보입니다. 남에게 피해주는 것도 아닌데 개인의 취향이 다른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사회라는 것인데…상당히 위험한 사회 아닐까요? 이런 위험한 사회에서 사회적으로 용납되는 취미생활이란 ‘남들도 하는 것’ 밖에 없습니다. 영화 관람에 있어서는 ‘지적 허영’도 없습니다. 소위 작품성 있는 영화지만 흥행하지 못한 영화를 본다 하더라도 주위의 반응은 썩 좋지 못합니다. ‘재미도 없는걸 보고 그러니’라는 반응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무슨 ‘지적 허영’으로 영화를 봅니까?
취미조차 용납하지 못하는 경직된 사회. 그에 따라 억압되는 개인. 즉, 사회가 개인을 억압하는 구조적 폭력에 대해 지적해야 하지 않을까요?
물론 저는 이런 관점을 떠나서 인터스텔라의 흥행은 그냥 ‘볼만한 오락영화’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개봉시기도 잘 맞았고요.
다만 언론이 진짜 ‘지적 허영’을 흥행의 원인이라고 생각했다면 그 배경까지 지적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관람의 원인이 ‘지적 허영’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지적 허영’자체는 많이 보이긴 합니다.
‘지적 허영’은 인터넷에서 주로 볼 수 있는데 멀리 갈 필요도 없이 여기 있습니다(^^:). 인터넷 상의 ‘지적 허영’의 원인으로 결국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위의 얘기를 그대로 가져오고 싶습니다. 물론 사람들은 보통 자신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면 그렇게 허영심을 마구 뽐낼 수 없습니다. 문제는 자신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낄 계기 또한 부족하다는 것이죠.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진단이 ‘인터스텔라의 흥행 원인이 지적 허영’에 있다는 식의 어설픔을 보여주니 ‘저 정도면 나도 하겠다’라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결국에는 인터넷 상에서 보이는 ‘지적 허영’의 원인은 그 ‘지적 허영’을 지적하는 자칭 ‘전문가’ 집단에 있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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