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 2016. 9. 9. 19:05

 영화에 대해 평가하는 것은 주관적인 경험도 무시하지 못할 것입니다. 예를 들면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고공에서 일어나는 액션 장면을 보면 다른 사람들에 비해 좀 더 강렬한 인상을 받을 것입니다. 제게는 이 영화가 그렇습니다.

 

 저는 기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다지 진지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냥 막연한 동경에 가까웠다고나 할까요? 모 방송국에 입사지원서를 넣고 시험도 봤지만 결국 기자가 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제가 기자를 동경했다는 것이지요. 기자는 시대를 관찰하고 분석하는 판단력, 기사로 인해 피해를 볼지 모를 선량한 사람들까지 생각해 줄 수 있는 감성, 외압에도 굴하지 않는 강인한 의지를 갖춰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지원 당시만 해도 기자들은 그렇다고 믿었고요.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요? 시대의 지성, 저항의 등불 같은 용어는 들이대기도 부끄럽고 기레기라는 말이 더 자연스러울 정도입니다.

 그래서 영화에 대한 제 소감을 한 문장으로 말하면 이렇습니다. ‘어린 시절 동경했던 영웅을 다시 만난 기분

 

 영화를 좀 더 깊게 파보면 이 영화는 주인공도 악역도 철저하게 개인이 아닌 시스템으로 그려지기 때문에 엄밀하게 보자면 위대한 기자보다는 위대한 언론에 대한 얘기입니다. 자세하게 얘기하다 보면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고 반전이 중요한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아직 안 보신 분이 이 글을 읽어도 큰 문제는 안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 영화의 배경은 보스턴입니다. 보스턴의 지역 신문사인 보스턴 글로브지의 스포트라이트 팀이 이 영화의 주역이고요. 스포트라이트 팀은 집중 취재를 전문으로 하는 팀입니다. ‘어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와 같은 기사가 아닌 보스턴의 범죄율이 증가하는 이유와 개선 방향같은 좀 더 심화된 기사를 쓰는 팀이죠. 그래서 매일 기사를 쓰는 게 아니라 몇 달씩 집중 취재를 합니다.

 이 신문사에 신임 국장이 오면서 스포트라이트 팀에 게오건 사건을 취재하라는 지시를 내립니다. 게오건 사건은 가톨릭 신부인 게오건이 아동들을 성추행하고 보스턴 교구의 추기경이 이를 알면서도 묵인했다는 의혹이 있는 사건입니다.

 

 일반적인 영화라면 이 이야기로 주위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는 독한 신문기자와 악의 축 게오건 신부(또는 추기경) 정도의 대결 구도를 만들 것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렇지 않습니다. 게오건은 이름만 언급될 뿐이고 추기경도 직접 적대감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영화가 진행되며 게오건 신부 외에 다른 신부들의 성추행 사건도 드러납니다. 대상자들을 꽤 많이 찾았을 때 팀원들과 국장의 회의에서 국장의 대사를 보면 이 영화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보이죠.

신부 개개인이 아니라 교회에 집중해야 해. 관행과 정책, 교회가 혐의를 피하려고 법을 악용한 정황, 교회가 문제 신부들을 계속해서 다른 교구로 전출 보낸 상황, 상부에서 체계적으로 은폐한 정황을 찾으라는 거야.”

 ‘인면수심의 신부이런 제목으로 기사를 쓰는 게 더 잘 먹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그것을 거부합니다. 시스템이 바뀌지 않으면 사람만 바뀔 뿐 사건이 계속 되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이 영화는 언론의 역할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 답을 던지고 있는 것입니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사건이나 주제를 보면 지루한 영화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이죠. 그래서 관심을 돌린 분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메시지가 아닌 영화적 재미에서도 뛰어납니다.

 가톨릭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거대함을 매우 능숙하게 보여줍니다. 신임 국장이 추기경을 만나는 게 관례라든가, 국장이 기독교 자선 단체 행사에 참여해야 하고, 교회가 법원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등의 모습이죠. 이런 모습을 구구절절하게 설명하는 게 아니라 매우 짧은 장면들로 영화 내내 계속 보여줍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나 가톨릭과 무관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죠.

 짧은 장면들의 교차 편집도 상당히 잘 사용합니다. 이 영화는 교차 편집이 상당히 빈번한데 이러한 편집이 신파적이고 지루해질 수도 있는 피해자 인터뷰 같은 상황에 속도감을 부여합니다.

 영화에 적당한 긴장감도 잘 부여하는 편입니다. 초반에는 신임 국장에 대한 팀원들의 불안감을 보여주어 긴장감을 높이고 사건이 진행되면 등장인물들을 의심하게 합니다. 사건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과거에도 제보가 있었는데 신문사에서 제대로 다루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지는데 이때 관객은 신문사의 누군가를 의심하게 됩니다(하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이 부분에 집중하지는 않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영화의 양념일 뿐입니다.). 제보자들도 신뢰하기는 어렵습니다. 피해자들의 변호사인 개러비디언은 인터뷰도 회피하고 과대망상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신중해 보입니다. 피해자 단체 대표인 사비아노에 대해서는 부국장이 항상 정신이 좀이라고 표현하죠(상당히 다혈질로 좀 미친 사람 같아 보입니다.). 주요 제보자 중 하나인 사이프는 목소리만 나옵니다(기자들과 전화로만 통화).

 이러한 장치들이 기사화될 때까지는 비밀을 유지해야 하는 기자들의 상태가 맞물려 첩보 영화 같은 느낌까지 나고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이 영화는 대단히 묵직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영화에 효과적으로 긴장감과 속도감을 부여하여 영화적 재미도 잘 잡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posted by 홍수영(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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