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스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신파극-191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우리나라에서 유행하였던 연극 형태. 우리 정서에 맞지 않는 일본의 신파극을 모방하기도 하였으나, 점차 고유한 대중적 정서를 위주로 하였다.
위는 국립국어원의 ‘신파극’의 정의다. 신파극이란 일본에서 서양문물을 받아들이면서 가부키 연극을 구파극, 그에 대립하는 서양식 연극을 신파극이라 칭한 것이다. 초기에는 근대 특유의 계몽적, 정치적 요소도 있기는 했지만 후기에는 오락적이고 감상적인 요소가 강해졌다고 한다. 일본의 신파극은 최루성 짙은 감상물이 많았으며 한국에 들어오면서 그대로 번안되어 들어온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지금에서 ‘신파’ 찍는다고 하면 최루성 짙은 억지 감동을 얘기한다. 원 정의대로의 신파극은 한국에서는 광복을 맞이하여 왜색으로 치부되어 소멸했다.
지금에서는 ‘신파’가 원래의 신파극과는 많이 다른 의미다. 아이러니하게도 신파(새롭다는 의미였는데)는 이제 구닥다리(21세기에 19세기~20세기 초반 형식이니 구닥다리가 맞긴하다.)스러운 억지 눈물 쥐어짜기가 되었다.
승리호의 신파는 현재의 ‘신파’와 딱 맞는다. 넷플릭스에 런칭하여 세계인이 보고, 우리나라에서는 흔하지 않은 SF장르라는 점에서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승리호는 우주쓰레기를 수집하여 팔아먹는 4인조가 사건에 휘말리는 영화다. 일단 SF적인 설정이 참신함이 없다는 점에서 아쉽다. 액션은 전체적으로 시원시원하고 CG도 잘 만들어졌으나 우주 공간의 특수성을 잘 살린 느낌은 아니다. 다만 액션과 무난한 설정의 조합이 이 영화의 끝이었다면 오히려 지금보다 더 높은 점수를 줬을 것이다. 가볍게 보기 좋은 오락 영화로 남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화의 신파는 끔찍하다. 나는 신파를 나쁘게 보지는 않는다. 예를 들면 부산행의 신파는 극의 긴장을 떨어트리긴 하지만 상황의 처절함을 부각시키는 장치로도 나쁘지 않았다. 또한 운인지 실력인지 알 수는 없지만(감독의 후속작인 염력이나 반도를 본다면 실력은 아닌 것 같다.) 적절한 캐스팅으로 큰 배경설명 없이도 신파 장면을 넣을 수 있어서, 극의 흐름이 지나치게 끊긴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았다(극 중에서 공유의 딸 사랑이 느껴지는 장면이 거의 없는데도 마지막에서 공유의 표정 하나로 다 설명되는 느낌이다.).
반면 승리호는 메인 스토리 자체가 대량살상무기로 알려진 ‘도로시’라는 인간형 로봇과 승리호의 선원들이 엉키면서 생기는 일이고, 그 도로시의 사연이 메인 스토리다. 이 메인부터 신파적인데 승리호의 선원인 태호(송중기), 장선장(김태리), 타이거 박(진선규), 업동이(유해진)가 각각 사연이 있다. 문제는 등장인물 5명이 모두 사연이 있는 경우 그것을 처리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심지어 그 5명의 유기적으로 얽힌 사연이 아니라 제각각이라면 2시간짜리 영화로는 관객이 납득할 만한 사연을 보여줄 시간이 부족한 건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인지 승리호 선원 4명 중 태호의 사연만 중점적으로 나오면서 다른 인물들의 사연은 정말 짧게 언급만 한다.
영화의 줄거리는 이렇다. 지구가 너무 심하게 오염되어 살 수 없게 되고 UTS라는 거대기업이 우주 및 화성 이주를 진행하고 있는 미래. 승리호의 선원들은 우주쓰레기를 주워다 파는 빈곤한 신세. 어느 날 주워온 우주선 안에서 여자아이를 발견하는데 뉴스를 통해 그 여자아이는 수소 폭탄을 내장한 로봇 도로시라는 사실을 듣게 된다. 검은 여우단이라는 조직에서 도로시를 데려가다가 UTS에게 우주선이 격추당해서 승리호까지 흘러들어 온 것. 태호는 검은 여우단과 통화가 되고 검은 여우단은 거액을 제시하면서 도로시를 넘기라고 한다. 돈이 필요했던 승리호의 선원들은 검은 여우단과 거래를 하려고 하고 동시에 UTS에 쫓기게 된다.
줄거리만 보면 SF액션 활극이 어울릴 것이며, 몇몇 장면은 충분히 그런 느낌을 내고 있다. 문제는 신파에 치중하여 이 단순한 스토리 조차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태호의 사연 소개가 영화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여 이 단순한 스토리조차 긴장감이 없다.
그러면 신파는 잘 살렸는가? 정말 보면 눈물이라도 펑펑 쏟을 것인가? 분량상 주인공인 태호는 영화 내내 도로시를 빨리 팔아치우려고만 하다보니 마치 악역 같아보인다. 죽은 딸과 도로시를 겹쳐보는 부분이 거의 마지막에나 나오는데 영화내내 했던 짓이 있어서 별로 와닿지 않는다. 분량상 태호가 주인공인데 도로시에게 너무 차가워서 그런 느낌이 별로 없고 오히려 타이거 박이 주인공처럼 느껴진다. 개그와 액션은 업동이가 담당하고 있다보니, 마치 주인공도 아닌 태호가 분량을 잡아먹고 있는 느낌까지 든다. 장선장은 과거에 UTS의 수장인 설리반을 암살하려다 실패했다는 과거가 있는데, 스토리상 메인 악역이 설리반임을 생각하면 설리반과 제대로 얽혔던 사람인 장선장이 주인공인게 더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등장인물을 다시 정리하면
태호-신파를 위해 많은 장면을 할당했지만 정작 그게 잘 표현되지 않음
타이거 박-주인공도 아닌데 그나마 신파라고 할만한 장면은 이 사람이 다 해먹음
업동이-액션과 개그 담당. 어떤 의미에서는 무난한 캐릭터.
장선장-신파가 아니라 SF를 찍고 싶었다면 스토리의 중심축이 되었어야 될 캐릭터가 업동이보다 비중이 없다.
캐릭터가 이렇다 보니 무난한 서사조차 제대로 흘러가지 않고, 신파는 망해서 하품하다 눈물날 판이다(태호의 심각함에 비해 다른 인물들이 지나치게 밝게 그려진 것도 원인이다.).
잘못된 신파는 무엇인가? 스토리와 관련없이 뜬금없이 나오면서 이야기의 흐름을 끊는 억지 울음 또는 감동일 것이다. 그것이 극 전체의 분위기와 맞지 않는다면 더더욱 문제다. 승리호의 메인 스토리는 설리반, 도로시, 장선장의 비중이 커야 할 텐데 뜬금없이 태호의 비중이 가장 크며, 태호를 제외한 나머지 인물들은 대체로 밝은 분위기라서 분위기도 맞지않다. 그런 면에서 승리호는 아주 교과서적인 잘못된 신파극의 사례다.
결론적으로 승리호는 이것저것 무난한 소재로 무난한 영화를 만들고자 했으나, 잘못된 신파의 교과서적인 사용으로 아무것도 이뤄내지 못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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